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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벼(O.SATIVA L.)의 기원에 관한 주장에는 인도기원설, 중국기원설, 동남아기원설 및 아삼(ASSAM, INDIA)·운남설등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인도의 아삼지방과 중국의 운남성 부근을 아시아 재배벼의 기원지로 보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특히, 인도, 미얀마, 태국, 베트남 및 중국에 걸쳐 브라마푸트라강(BRAHMAPUTRA), 갠지스강(GANGES), 이라와디강(IRAWADDY), 샐위인강(SALWEEN),
매콩강(MEKONG), 양자강 등의 큰 강들이 아삼과운남성 부근 고원지대로 부터 발원되어 인도, 인도지나반도 및 중국의 저습지대로 내려가고 있는데
이 강들의 물줄기를 따라 각 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전파된 벼는 바로 이기원지로 부터 양자강 및 황하를 따라 전래된
것이라 합니다.
한국의 고고학자 안승모의 저서 '아시아 재ㅐ벼의 기원과 분화(학연문화사 1999)'를 참고, 고고학적 증거를 종합하여 볼 때 중국의 양자강 중류에서 하류지역이 아시아 재배벼의 기원지로 추정되며 이곳에서 재배되던 벼가 양자강 상류 운남을 거쳐 태국북부에 도입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한편으로는 중국 동해안을 따라 동남북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 됩니다.
쌀의 역사
쌀은 보리·밀과 함께 세계적으로 중요한 농산물 중 하나입니다. 세계 총생산량의 약 92%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며, 또 그 대부분을 아시아
사람들이 먹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도 그중 하나입니다.
한국에는 쌀이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으로 부터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탄화된 쌀이나 벼의
탄소 동위원소 연대추정(CARBON DATING)및 기타 고고학적 증거로 부터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쌀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잡곡(피·기장·조·보리·밀 등)주식(主食)으로 하였으나 1천여년전, 즉 남북국시대부터 벼의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쌀이 우리 식생활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쌀이 들어오면서 분식(紛食)중심에서 쌀밥 중심의 식생활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한국에서 쌀이 차지한 정치적·경제적·농업기술적 위치는 너무나 뚜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쌀은 5~6세기경까지만 해도 귀족식품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통일신라의 주식 유형을 보면 북부는 조, 남부는 보리, 귀족층은 쌀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쌀은 물가의 기준이요 봉급의 대상으로 할 정도로 귀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쌀의 생산량이 좁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차차 좁쌀보다 많아져
곡류의 대표격이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온 후부터라고 알려지고 있씁니다.
출처 :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1차 발굴은 구석기 문화층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A지구 II 구역 토탄층 일부에 대해 발굴작업이 이뤄졌지만, 2차 발굴작업은 볍씨를 찾는
작업이라 대나무칼로 토탄층을 얇게 쪼개고 쪼개 수거된 토탄들을 물체질 정밀작업을 실시하여 고대벼 6톨과 유사벼 30톨을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출토된 볍씨는 바로 서울대학교 AMS(방사선탄소연대측정) 연구실과 미국의 지오크론(Geochron Lab.)’연구실로 보내져,
1만 3000년~1만 5000년 전의 절대 연대값을 얻어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임이 판명됐습니다. 소로리 볍씨가 1만 5000년 전 것으로
판명되자 일부 학계에서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즉, 1만 5000년 전은 구석기말 빙기의 끝무렵인데 한반도에서 아열대 식물로 알려진 벼가 추운 기후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 또, 그 벼가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그 고증을 얻기 위해 청주MBC 취재팀이 국립 작물시험장 춘천출장소에서 냉해실험을 통해 벼가 자랄 수 있는 온도를 실험한 결과, 벼가 자연상태에서 최저 발아온도가 섭씨 20도로 알려졌지만, 실험결과 13도에서도 70%이상이 발아되어 생성되는 연구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냉해실험을 통해 따뜻한 기후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벼가 기후적응을 잘하는 식물로 1만 5000년 전의 학설에 긍정적 무게가 실린 것입니다.
볍씨를 분석한 허문회(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학수(영남대학교 교수), 박태식(작물시험장 박사), 조용구(충북대학교 교수) 등의 연구에 따라, 소로리 볍씨는 재배벼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여기에 따라 이융조(충북대학교 교수)는 재배벼 이전의 순화벼로 국내외 학계에 발표하였습니다.
2003년 10월 22일,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영국 BBC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소로리 유적에서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라고 하는 타이틀로 보도하였으며, 인터넷판으로 다시 그 내용을 전 세계에 보도하여, 이제는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인 것으로 공인받은 셈입니다


한국에서는 1920년 김해 패총을 발굴할 때 조가비층 내에서 불탄 쌀 덩어리가 나온 것이 처음이며, 그 뒤 부여(扶餘) 부소산성(扶蘇山城) 군창지(軍倉址)에서도 불에 탄 쌀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1974년 고성(固城) 동외동(東外洞) 조개무지(貝塚)유적 발굴조사에서 나온 것들의 낱알 크기를 재서 보고한 자료가 있습니다. 고성 패총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 동투겁창(銅矛), 한대(漢代) 청동거울(銅鏡) 등과 함께 나와 B.C. 4~3세기의 유적으로 나타나며, 함께 나온 탄화미의 크기는 평균 길이, 너비가 4.4×2.3㎜입니다.
한편 1977년에 발굴한 부여 송국리(松菊里) 유적의 54지구 제1호 집자리에서도 탄화미가 다량 발견되었습니다. 유적의 연대는 B.C. 6세기 전후로 탄화미의 평균 크기는 4.2×2.37㎜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지역에서도 1979~81년 사이에 발굴한 평양(平壤) 남경(南京) 유적에서 탄화미가 나왔습니다. 남경 제36호 집자리 안에서 탄화미와 더불어 조, 수수, 기장, 콩 등 오곡의 낱알이 집자리 바닥 가운데 부분에 흩어진 채로 발견되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유적의 연대는 B.C. 10~9세기이며, 탄화미의 크기는 4.5×2.5㎜입니다. 남경 유적에서 나온 탄화미는 한반도 북부지방에서는 처음 나온 것으로 선사시대 벼농사 가능 지역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하였고,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벼농사 전래경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출처 : 청원군청
사천여년전 우리 민족이 벼농사를 시작한 이래로 쌀은 단순한 먹거리의 의미를 넘어 우리 민족의 신앙이고 화폐였으며 정신적 뿌리입니다.정성스럽게 준비한 쌀 한 그릇과 정화수를 떠놓고 며느리의 임신과 순산을 빌었으며 출산 후에는 쌀로 밥을 짓고 미역국을 먹었고 가정의 뒤울 안에는 성주단지를 만들어 놓고 해마다 햅쌀을 갈아 담아 넣으면서 풍년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했는가 하면 인생을 마감하는 자리에도 시신을 염습하기 직전에 버드나무 젓가락으로 세 번 떠 먹여서(반함) 배고프지 않고 저승까지 잘 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쌀, 밥, 떡에 얽힌 속담은 대단히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 지방마다 떡에 관련된 타령이 있을 정도로 쌀을 중심으로 한
식생활문화는 우리의 생활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나눠먹는 공식풍속이 있습니다. 조상에 대한 2대 큰 제사는 음력 정월 초하루 설과 음력 8월 15일 추석 명절입니다. 이외에 조상이
돌아가신 날을 기제일이라 하여 제사를 지냅니다. 이러한 제사 음식은 쌀요리가 중심이 되고 정월 초하루 설날에는 흰가래떡으로 만든 떡국 차례를, 추석에는
송편 차례를, 기제사에는 멥쌀로 밥을 지어 제사를 올립니다. 
우리나라 세시음식은 살아가면서 어려운 고비마다 가족에게 별식을 먹도록 한 것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이러한 세시의 음식은 쌀밥을 비롯하여 떡, 죽, 술 등 쌀을 이용한 음식이 주체가 되고 있습니다.
돌상에는 아이 앞에 쌀, 실, 국수, 붓, 책, 활 등을 놓아 아이의 장래를 점치며 상에는 과일과 백설기, 인절미, 팥고물 수수경단, 송편 등을 놓는데 특히 백설기는 아이의 신선함을 의미하고 수수경단은 팥과 수수의 붉은색이 아이의 재앙을 막아준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결혼식을 끝낸 신랑 신부를 위한 주물상에는 국수장국 외에 찰떡, 엿, 깨죽 등을 놓았는데 이것은 사이 좋게 오래 살고 깨가 쏟아지게 재미있게 잘 살라는 뜻입니다. 제상에 올려 놓은 밥을 메라 하고 불단에 놓은 밥은 마지, 명복을 빌기 위해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을 잿밥이라 합니다.
상례에서 시체에 옷을 다 입히면 염하기 전에 쌀을 물에 불려서 사발에 담아 버드나무 숟가락 시체의 입을 벌리고 떠 넣는 것을 반함이라 하는데 이것은 죽은 사람이 저승까지 갈 때 먹는 식량이라고 믿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출처 :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